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콘라트 아데나워 (문단 편집) == 평가 == > Er ist derjenige gewesen, der auch mit seiner Persönlichkeit die frühe Bundesrepublik massiv geprägt hat, und der selbst als jemand, der aus dem Nationalsozialismus unbelastet hervorgegangen war, als ein wirklicher Elder Statesman, Vertrauen für diese neue Republik gewinnen konnte. Und die Kategorie des Vertrauens, die kann man in ihrer Bedeutung gar nicht überschätzen. >---- > 아데나워는 자신의 개성을 바탕으로 초기 연방공화국의 틀을 폭넓게 다진 당사자였고, 나치즘으로부터 무관한 뒷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기에 진정한 원로 정치인으로서 신생 공화국에 대한 신뢰를 얻어낼 수 있었죠. 그리고 우리는 신뢰라는 상징이 갖는 의미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 >[[https://de.m.wikipedia.org/wiki/Andreas_R%C3%B6dder|안드레아스 뢰더]], 마인츠 대학교 사학과 교수 아데나워 이전에 독일인들이 완전한 민주정치를 체험한 시기는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하에서 이뤄진 1920년대의 10여년 정도에 불과했다. 그 이전에는 [[프로이센]]과 [[독일 제국]] 하에서 이뤄진 사실상 국왕/황제 중심의 [[전제군주제]] 국가였고, 바이마르 공화국도 20년대 패전의 여파를 겨우 딛고 일어설 무렵 30년대 대공황이 터지면서 위기를 틈타 [[나치]]가 등장, [[히틀러]] 독재 체제가 들어서고 말았다. 전통적으로 독일의 중심은 토지 귀족이자 군 장교들인 융커들이었고, 국가 체제도 귀족과 군부 중심의 [[병영국가]], 경제도 [[국가자본주의]]가 주류였다. 그래서 당시만 해도 상당수 독일인들에게 민주주의라는 것은 잠시간 시행된 적은 있었지만, 그리 매력적이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체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데나워는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정치/경제적으로 황폐화된 상태였던 독일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이후 독일은 이전의 국가들과는 다른, 건강한 시민 사회와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후 다시금 서유럽과 국제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독일식 자본주의 모델, 라인 자본주의라 불리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사회적 자본주의]]는 종래의 [[국가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시장경제|시장]][[자본주의]]를 추구한 것이었으면서도 영미식 [[경제적 자유주의|자유시장]] 자본주의나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와는 또 다른 경제시스템이었다. 다만, [[기민련]] 내부에서는 사회적 시장경제에 입각한 경제정책 및 사회복지정책을 둘러싸고 '[[복지국가|사회적]]' 측면을 보다 중시하는 [[기독교 민주주의]] 입장과 '[[시장경제]]' 측면을 보다 중시하는 [[질서자유주의]] 입장이 다소 입장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전자의 입장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아데나워는 전후 복구 기간에 후자의 입장에서 나오는 불만을 억누르면서까지[* 이때 보다 친시장, 친기업 입장에서 아데나워와 입장 차이를 보이며 복지 확대 노선을 우려한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시장경제를 도입한 장본인 에르하르트 당시 경제부 장관이었다.] 연금개혁과 같은 복지 확대를 실행하여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추구했다.[* 덕분인지 지금도 [[기민련]]과 [[기사련]]은 다른 나라의 우파 정당에 비해서는 상당히 중도에 가까운 포지션이다. 기민당의 온건한 성향+ 다당제, 내각제라는 제도적 요인 때문에 독일은 미국, 한국, 영국 등과 달리 우파 진영이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않고 온건 보수주의, 기독교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기민당, 경제적 자유주의, 고전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자민당, 우익 포퓰리즘과 강경 우익을 표방하는 독일을 위한 대안으로 나뉘어져 있다.] 물론 상기되어있듯 후기 내각으로 갈수록 --노망--삽질 빈도가 점점 늘어난 측면은 있지만, 대원칙이 파괴되거나 하는 선을 넘는 정도는 아니라 공을 인정받아 2003년 한 설문조사에선 위대한 [[독일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물론 항상 1위를 하는건 아니지만, 오늘날에도 [[에르하르트]],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총리 등과 더불어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덕분에 오늘날 독일 각지에서 콘라드 아데나워의 이름을 딴 지명이나 물건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독일 여러 도시에서는 콘라드 아데나워 가(街)/광장이 흔히 발견되며, 아데나워의 출신지인 쾰른의 공항엔 [[쾰른-본 국제공항|쾰른-본 콘라트 아데나워 국제공항]]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현 독일 기민당 당사의 공식 명칭은 콘라트-아데나워 하우스 (Konrad-Adenauer Haus)이고 독일 총리 [[전용기]]([[A340#s-7.2|A340-313X VIP]])의 이름도 [[https://en.wikipedia.org/wiki/Konrad_Adenauer_(aircraft)|콘라트 아데나워 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